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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적이고 긍정적인 메세지를 담은 40초 동안의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

공익광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광고입니다.
시민사회에서 시사될 가치가 있는 것을 알리는 대변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TV캠페인 효과

일반광고와 차별화시켜 Creative표현 + 일반광고보다 우수한 비용 효율성
  • TV CF에 비해 노출시간 대비 집행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일례로 전국권 SA급의 40초 공익캠페인 광고 단가는 1회 1,200만원으로 동일시급 15초 TV CF단가(약 1,000만원)의 45% 수준
  • 15~30초인 TV CF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시간(40초)동안 방송되어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표현이 가능
  • 시청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인해 캠페인 접촉 후 인지도 및 호감도의 상승이 가능

TV캠페인 역사

공익광고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광고다. 시민사회에서 시사될 가치가 있는 것을 알리는 대변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 산하에 공익광고협의회가 설립되면서 공익광고라는 개념이 도입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해방 이후부터 공익적 가치를 선전하는 광고가 있어왔다. 한국 전쟁 이후인 1950년대부터 공익광고가 지나온 흐름을 짚어 보면 한국 사회의 흐름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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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쟁 후유증
50년대의 공익광고는 직접적인 어조로 국민을 계도했다. 예를 들면 보건사회부의 "모기잡기운동, 또하나의 적 모기를 없애자", "쥐를 잡자" 농림부의 "아카시아를 사자" 등의 광고는 제목이 선동적이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구성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광고들의 탄생 배경은 당시 우리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전쟁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50년대의 낙후한 사회정신을 끌어올리려는 매중물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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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60~70년 박정의 정부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벌여 밥상까지 지도했다. 명분은 혼, 분식이 국민건강에 좋다는 것있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쌀부족이었다.

또하나의 운동은 가족계획정책이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잡곡밥을 섞어 먹도록 강제 받았던 시기에 가족들 중에 입이 하나 더 있는 것은 그야말로 큰 부담이었다. 오죽했으면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 못 면한다는 표어까지 등장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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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공익광고의 봇물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군사 정부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키워드는 질서였다. 아시안게임, 올림픽등의 굵직한 국가적 행사들이 있었다. 지하철 등의 공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움직임을 시작으로 저출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출산장려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관련 TV영상 캡쳐 이미지
1990년
내가 공익광고인거 몰랐지?
90년대는 공익광고가 달라지는 기점이다. 광고는 건강과 복지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청소년 문제, 환경문제,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있는데 특히 주목할 점은 90년 후반에는 IMF의 영향으로 "다시 일어서자"는 격려성 캠페인과 똑똑하고 현명한 소비를 유도하는 캠페인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관련 TV영상 캡쳐 이미지
2000년 핸재
안보이는 사람들
지금의 공익광고는 인터넷 세상의 폐단을 중재하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안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종의 목소리가 많다. 악성댓글로 상처받는 개인을 위해 공익이 나선 것이다. 시민 모두를 지칭하는 광고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로 올수록 광고는 정확한 타깃과 컨셉트를 짜서 공고를 만든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덕에 보이는 재미까지 있다. 공익의 입장에서 개인의 사비를 털어 해외 광고를 낸 사례도 눈여겨 볼 만 하다. 관련 TV영상 캡쳐 이미지